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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리도 실연당하면 술을 마신다 (공개)

괴짜 과학자들이 짝사랑한 곤충 출판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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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리도 실연당하면 술을 마신다





올해 4월 학술지 ‘사이언스’에 거꾸로 걷는 초파리에 관한 논문이 실렸다. 연구진은 열유전학 기법을 사용해 초파리의 행동을 연구하다가, 우연히 거꾸로 걷는 초파리를 발견했다. 이 초파리에는 ‘문워커(마이클 잭슨의 뒤로 걷는 춤)’라는 이름이 붙었다. 연구진은 이런 행동을 하게 하는 ‘문워커’ 신경세포가 단 7개로 구성돼 있으며, 중추신경계와 다리 근육 사이에서 스위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흥미로운 초파리는 이밖에도 다양하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의 데이빗 앤더슨 교수는 왜 초파리 수컷이 암컷보다 공격적인지 연구해 올해 ‘셀’지에 발표했다. 원인은 ‘타키키닌(Tachykinin)’이라는 작은 신경 펩티드를 만드는 세포였다. 이 세포가 수컷에만 있기 때문에 수컷이 더 공격적이었던 것이다. 연구팀은 초파리 수컷의 공격성에서 각 단계에 사용되는 유전자들과 신경회로의 지도를 비교해 이런 사실을 밝혀냈다. 흥미롭게도 이 사실은 사람과 초파리가 같다.


이제 논문은 그만 쓰세요


인류는 늑대를 개로 길들이기 시작한 1만5000년 전부터 기초적인 행동유전학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현대적 의미의 행동유전학 혹은 행동신경유전학은 1960년대 중반 칼텍의 시모어 벤저 교수 연구실에서 시작됐다. 시모어 벤저 교수는 ‘통섭’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미국 하버드대의 개미 연구가 에드워드 윌슨이 “벤저가 프로이드보다 낫다”고 말 할 정도로 업적을 인정 받는다. 칼텍도 그의 업적을 기려 시모어 벤저 석좌교수직을 만들었다. 앞서 말한 앤더슨 교수가 현재 그 자리에 앉아 있다.


벤저에겐 특이한 버릇이 하나 있었다. 그는 무엇에 대해 완전한 지식을 얻으려면 그것을 먹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벤저의 실험실에 그의 이름을 딴 식당이 있었는데, 식탁에는 암소의 젖통, 황소의 고환, 악어 꼬리, 포를 뜬 뱀과 같은 괴상한 음식이 올라오곤 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모습이나 그가 과학자로서 걸어온 여정은 행동유전학 연구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언덕 위의 거북이


첫째, 초파리 행동유전학자들은 벤저의 “먹어봐야 안다”라는 말처럼 이론이나 사변보다 실험으로 볼 수 있는 과학을 좋아한다. 둘째, 벤저는 물리학자에서 분자생물학을 거쳐 행동유전학으로 끊임없이 도전했는데 덕분에 행동유전학에는 모험적인 연구가 매우 많다. 행동유전학자들은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과학자 집단이다. 벤저는 “진정한 과학자는 정신분석학자처럼 추측만 해대는 사이비 학자들을 경멸한다”고 말했다.


벤저의 연구 경력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탐험 같았다. 1960년대 중반, 벤저는 박테리아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인 T4박테리오파지에 대한 연구로 이미 유명해졌다. 1년에 6편의 최고급 논문을 쓰며 과학자로서 잘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승인 막스 델브뤽은 벤저의 아내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친애하는 도티, 부탁컨대 시모어에게 논문은 그만하면 됐으니 더 이상 쓰지 말라고 전해주시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벤저는 문득 자신이 재미도 없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정말 흥미로운 연구를 할 때였다. “델브뤽은 침몰 직전에 있던 나를 구해 줬다.” 그렇게 행동유전학 연구가 시작됐다. 요즘 세상에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스승과 제자의 과학에 대한 진지한 사랑이다.

 


 


 



연구는 200번 안에 승부를 내라


벤저 교수는 행동과 정신을 유전자와 연결하고 싶어했다. 그에게 프로이드를 비롯한 심리학자들의 연구방법은 너무 형이상학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마침 초파리는 유전자의 관점에서 행동을 연구할 수 있는 최적의 생물이었다. 벤저 교수는 초파리를 통해서 처음으로 빛에 반응하는 행동, 즉 주광성에 관여하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밝혔다. 그리고 1967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역류장치로 분리된 초파리의 행동 돌연변이들’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선구적인 논문 이후 시각에 관여하는 돌연변이가 차례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동물처럼 초파리도 태양과 지구의 리듬에 자신의 행동을 맞춘다. 흔히 생체시계라고 부르는 이런 행동의 바탕에 유전적 기반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1971년 벤저와 그의 제자였던 로날드 코노프카가 밝혔다. 코노프카는 일주기 행동에 문제가 생긴 돌연변이를 만들기 위해 화학물질을 이용했다. 그리고 매일 새벽 실험실에 나와 아직 번데기에서 성충으로 우화하지 못한 초파리에서 원하는 돌연변이를 찾기 시작했다. 초파리는 자기 학명, ‘이슬을 사랑하는 동물(Drosophila melanogaster)’답게 보통 새벽에 성충으로 우화한다.


사람들은 코노프카가 유전자 차원에서 분석하기엔 너무나 복잡한 행동을 골랐다고 비아냥댔다. 하지만 200개의 다른 돌연변이체를 확인했을 때 코노프카는, 시간과 상관없이 우화하는 시계 돌연변이체를 찾아냈다. 여기에 피리어드(period)라는 이름을 붙혔다. 초파리 유전학자들은 이를 ‘코노프카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초파리 돌연변이를 실험할 때 처음 200개에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거기서 멈춘다. 그 이상 해봤자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지도교수도 학생들에게 습관처럼 200개까지 해봤냐고 묻곤 했다.


처음에는 벤저와 코노프카의 결과를 아무도 믿지 않았다. 스승인 델브뤽조차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피리어드 유전자가 인간의 몸에도 존재하고, 24시간 주기를 맞추는 데 사용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생체시계 유전자들에 대한 모든 연구는 초파리의 피리어드 유전자로부터 시작됐다. 아무 생물학 교과서나 펴보라.


애인에게 차인 초파리의 '소주 한 잔'



시모어 벤저교수와 제자들




초파리의 사랑과 전쟁


초파리 수컷의 구애행동은 전형적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암컷을 만나지 못한 수컷조차 아주 정확하게 구애행동의 레파토리를 똑같이 보여준다. 지금 당장 유튜브에서 ‘초파리 짝짓기(fruit fly courtship)’를 검색해보라. 이런 ‘초파리 야동’을 보면 왜 행동유전학자들이 수십 년간 초파리를 붙잡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코노프카가 초파리 생체시계 유전자에 관한 논문을 출판한 때, 미국 워싱턴대 의대생이었던 제프 홀이 벤저의 실험실에 합류했다. 홀은 초파리의 구애행동에서도 코노프가와 같은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미 구애행동을 연구하던 요시키 호타와 홀은 힘을 합쳤다. 이들은 몸이 암수 모자이크로 이루어진 초파리(자웅모자이크)를 해부해 수컷의 구애행동에 필요한 중추신경계의 지도를 그리는 데 성공했다.


홀은 초파리의 동성애에도 매료됐다. 1963년 예일대에서 프루티(동성애)라는 돌연변이 초파리가 동성애 성향을 보인 적이 있었다. 훗날 홀이 이 돌연변이를 받아서 수컷들끼리 구애행위를 보이는 ‘아름다운(?)’ 유전자를 발견했다. 이 유전자의 이름을 프루트리스(fruitless)로 지었다. 자손을 남길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동성애 유전자다. 계속된 연구 결과, 프루트리스는 초파리의 성을 결정하는 핵심 전사인자며 수컷과 암컷의 신경계를 분화시키는 촉발자로 밝혀졌다.


홀은 벤저의 제자 중에서도 가장 괴짜다. 평소에는 할리 데이비슨으로 모터싸이클을 즐기고, 몸 여기저기에 문신을 새겼다. 독립전쟁에 관심이 많아 게티스버그 전투에 관한 책을 출판한 아마추어 역사학자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연구비 시스템과 상위 학술지들의 독재에 저항해 교수직을 정년보다 일찍 내려놓았다. 특이한 성격도 스승에서 제자에게 ‘유전’되는 모양이다.

 

우생학의 뒤틀린 그림자




하루 종일 수다 떨어도 연구만 잘해


벤저의 연구실은 특이한 분위기로 유명했다. 그들은 모여서 하루 종일 수다를 떨었는데, 그런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험실을 떠난 이들도 많았다. 물론 떠난 자들은 이 실험실에서 향후 행동유전학의 전성기를 이끌 많은 연구가 나오리라는 걸 몰랐다. 1910년 초파리 유전학을 창시한 모건이 화이트(white)라는 흰눈 초파리 돌연변이를 최초로 분리한 이후 50년간 유전학의 발견은 초파리가 선도했다. 행동유전학도 초파리와 함께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초파리 연구자인 휴고 벨렌의 말을 마지막으로 들어보자.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지만, 초파리 연구가 신경계 연구의 핵심을 파헤칠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초파리 연구 도구들은 비교 불가능한, 전대미문의 정교함과 정밀도를 지니고 있고, 생물학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질문에 아주 빠르게 대답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게다가 이 연구 방법들은 순식간에 다른 분야로 퍼져나간다. 초파리는 신경과학자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모델종일 수밖에 없다. 1910~60년, 50년 동안 만든 초파리 유전학 연장통들이 신경생물학에서 대부분의 발견을 이끌었고, 1960~2010년 50년 동안 만든 초파리 유전학 연장통들이 향후 50년 신경과학의 흐름을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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