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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Part3. ‘살아남은 자’의 슬픔, 뇌를 위협한다 (공개)

출판일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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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미국에서 9·11 테러가 일어나기 전까지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테러는 남의 일이었다. 하지만 9·11 이후 미국에서는 다시 탄저균 테러가 일어났고, 영국에서도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네덜란드에서도 반(反)이민 정책을 추진하던 정치인이 살해당하는 등 잇따라 크고 작은 테러가 발생하면서 이제 테러는 언제 어디서 벌어질지 모르는, ‘상존하는 위험’이 됐다. 그리고 각종 테러를 계기로 이뤄진 다양한 연구 결과들은 테러가 피해자들을 비롯해 광범위한 사람들의 뇌에 상흔을 남긴다고 한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테러 생존자 PTSD, 평생 갈 수도 있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는 충격적인 사건이 계속 떠오르거나, 사건과 관련 있는 자극을 자기도 모르게 회피하는 반응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을 말한다. 각종 사고와 범죄, 테러 피해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캐나다 뉴펀들랜드메모리얼대 심리학과 로버트 애더멕 교수는 PTSD로 이어질 수 있는 조건을 연구해 2005년 8월 학술지 ‘신경과학및생물행동연구’에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스트레스가 얼마나 극심한지’와, ‘그 스트레스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한 요인이었다. 극심한 충격과 통제 불능 상황을 겪은 파리 테러 피해자들은 PTSD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테러 생존자들의 PTSD 발병을 막고, 만성질환으로 이어지지 않게 할 방법은 없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한 대처다. 미국 에모리대 정신및행동과학과 더글라스 브렘너 교수에 따르면, PTSD를 유발할 수 있는 충격적인 상황에서 얼마나 빨리 적절한 개입이 이루어지는지가 만성적인 PTSD로 발전될지 여부를 결정한다. 예를들어 동물 실험을 해보면 기억과 관련된 해마의 특정 부위를 제거해 충격적인 기억을 제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당 사건이 일어나고 한 달이 지난 뒤에는 이 같은 개입도 효과가 없었다.

만약 적절한 개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PTSD가 뇌의 주요 부위에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뇌과학자들이 테러로 인한 PTSD를 연구하며 특히 주목하는 부위는 편도체와 전두피질, 그리고 해마다. 애더멕 교수팀은 고양이에게 공격 받은 실험쥐의 편도체가 극도로 민감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편도체는 정서와 관련된 정보를 처리하거나, 특정 사건과 감정을 연결지어 기억하는 부위다.

미국 터프츠대 심리학과 리사 신 교수팀은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실험을 통해 만성 PTSD 환자의 경우 전두피질에 있는 전방대상피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해 ‘생물정신의학’ 2001년 12월 15일자에 발표했다.
[올해 1월에도 프랑스의 풍자 주간지‘샤를리 에브도’의 파리 본사 건물에서 테러가 발생해 유럽 전역에서 반(反) 테러 집회가 일어났다.]



전방대상피질은 불안한 감정이나 고통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부위인데,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군인 가운데 PTSD 환자들과 일반인을 각각 8명씩 뽑아 fMRI 검사를 실시했더니 특이한 반응이 나타났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fMRI 촬영을 하는 동안 화면에 뜨는 단어의 글자 수를 세도록 했다. 이때 PTSD 환자와 일반인 모두 중립적인 단어나 보편적으로 부정적인 뜻을 담은 단어에는 뇌에서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전투와 관련된 단어의 글자 수를 셀 때는 달랐다. 일반인에게서는 전방대상피질의 활성이 증가한 반면, PTSD 환자에게서는 변화되지 않았던 것이다. 연구팀은 추가 연구를 토대로 전방대상피질에 생긴 문제가 편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상적으로 활성화돼야 할 뇌 부위가 활성화되지 않으면서 다른 부위(편도체)가 극도로 예민해져 감정이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뇌에서 기억과 함께 스트레스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해마다. 미국 재향군인병원연구소 마크 길버트슨 박사팀은 강한 스트레스가 지속될 경우 해마가 작아지고, 결국 PTSD에 취약해진다는 사실을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2002년 10월 15일자에 발표했다. 해마는 뇌하수체전엽을 자극해 부신피질호르몬을 분비시키고, 그 결과 부신피질에서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호르몬인 코티솔이 나온다. 이는 다시 해마를 자극해 코티솔 분비를 억제한다. 따라서 해마가 작아지면 스트레스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 이번 파리 테러에서 이미 누적된 스트레스로 해마가 수축돼 있었던 피해자들의 경우 향후 PTSD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김지은 이화여대 뇌·인지과학과 교수는 “특히 머리를 다친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인균 이화여대 뇌·인지과학과 교수팀이 베트남전 고문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fMRI 검사를 실시한 결과, 머리를 다친 경우 수십 년이 지나도 회복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뇌의 회복력이 중요한데, 머리 부상은 그럴 수 있는 여지까지 앗아간다”고 말했다.

가족, 친구, TV 보던 어린이들도위험

테러는 피해자 자신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의 정신건강까지 위협한다. 또 세대를 넘어서도 이어진다. 9·11 테러 이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뉴욕시민 가운데 약 53만 명이 PTSD 증상을 호소했다. 특히 약 1700명의 임신한 여성이 테러에 직접적으로 노출됐고, 그 중 일부는 PTSD 증상을 나타냈다.

뉴욕 시나이산의대병원 정신의학및신경과학과 레이첼 예후다 교수팀은 테러 당시 현장 인근에 있었던 38명의 임신 여성을 추적 조사한 결과를 ‘임상내분비·대사학회지’ 2005년 5월 3일자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첫 조사 때를 보면 이들 가운데 PTSD 증상을 나타낸 여성들이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 비해 코티솔 농도가 낮았다. 1년 뒤 자녀들을 대상으로 코티솔 농도를 확인했더니 PTSD 증상을 나타냈던 여성이 낳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코티솔 농도가 낮았다. 특히 테러 당시 임신 후기에 있었던 여성이 낳은 아이들에게 이 같은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코티솔 농도가 낮은 아이들은 새로운 스트레스 자극을 줬을 때 상대적으로 더 괴로워하는 반응을 나타냈는데, 이 역시 사건 당시 임신 후기였던 여성이 낳은 아이들에게서 심했다.

테러 피해자의 배우자에게서도 PTSD 증상이 나타났다는 보고도 있다. 미국 오클라호마대 보건과학센터 베티 페퍼바움 교수팀은 1995년 발생한 오클라호마 연방정부청사 폭탄테러 피해자의 배우자들을 추적 조사한 결과, 7년이 지난 뒤에도 이들에게서 스트레스 조절 장애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페퍼바움 교수팀은 테러로 친구를 잃은 아이들과, 테러 상황을 텔레비전으로 시청한 아이들에게서도 PTSD 증상이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를 2000년과 2003년에 각각 발표했다. 연구팀은 “테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어린 아이들의 경우 테러 장면이 나오는 미디어를 접하지 않도록 부모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호주 경제평화연구소가 11월 17일 발표한 세계 테러리즘 보고서에 따르면, 테러 희생자 수는 15년 전에 비해 10배나 증가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 선포됐지만, 이대로라면 21세기는 테러의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특히 테러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무기로 개인과 공동체의 정신을 서서히 파괴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테러와 그로 인한 PTSD로부터 우리 모두를 지키는 방법은 서로를 지지하며, 배려하고, 연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테러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길은 공동체를 이루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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